
‘야근’은 도시 직장인들에게 익숙한 단어지만, 남극처럼 극한의 환경에서조차 이런 개념이 존재할까? 밤과 낮의 경계가 사라진 곳, 자연이 아닌 ‘임무’가 하루를 결정하는 공간인 남극 연구기지에서는 다르게 작동하는 생활과 업무의 리듬이 있다. 2026년 현재, 남극에서의 ‘야근’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지금부터 살펴보자.
밤이 오지 않는 땅에서 야근은 어떻게 생기는가?
남극은 시간의 개념 자체가 다르다. 백야 기간에는 하루 24시간 해가 떠 있고, 극야 기간에는 몇 달간 해를 볼 수 없다. 이는 생체리듬을 파괴하는 가장 강력한 자연적 요인이며, 인간이 익숙한 ‘하루 24시간 주기’는 이곳에서 사실상 의미를 잃는다. 때문에 남극 기지에서는 인공적인 시간대를 만들어 생활을 통제한다. 세종기지는 한국 표준시(KST)를 기준으로 하루 일과를 유지하며, 기상시간, 식사, 회의, 실험 등의 일정을 정해 생활 리듬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조명도 이 일정에 맞춰 조절되며, 특히 백야 시즌에는 밤이 되어도 조명이 어두워지는 방식으로 낮과 밤의 인식을 유지한다. 그러나 실제 자연광이 24시간 지속되다 보니 사람의 뇌는 낮과 밤을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돼 잠에 들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 수면 시간이 점차 늦춰지고, 자정이 넘어도 실험실에서 불이 꺼지지 않는 일이 잦아진다. ‘야근’이라는 단어는 도시처럼 공식적인 근무 시간 이후의 연장 노동을 의미하지만, 남극에서는 그것이 단지 하루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이 된다. 특히 24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데이터 수집이 필요한 대기 관측, 해양 샘플링, 우주 방사선 측정 등의 실험은 교대로 근무를 하더라도 담당자의 모니터링이 지속되어야 하며, 야간 시간대에도 실시간 확인이 필요하다. 이상 데이터가 포착되면 즉각 조치를 취해야 하므로 잠들 수 없는 밤도 존재한다. 또한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나 설비 오류가 발생하면 기술인력과 연구진은 시간과 상관없이 동원된다. 따라서 남극 기지의 야근은 상사의 지시나 조직 문화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과 생존, 시스템 유지라는 근본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만큼 이곳에서는 ‘시간’보다 ‘임무’가 하루를 결정하며, 피로를 무릅쓰고서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낮이든 밤이든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극지 근무에서의 야근은 왜 특별한가?
남극에서의 야근은 일반 직장과는 구조 자체가 다르다. 첫 번째로, 남극 기지의 구성원들은 모두 함께 생활하고 함께 일한다. 생활 공간과 업무 공간이 하나로 통합된 구조 안에서 업무와 휴식의 경계가 흐려지기 마련이다. 저녁 식사 후 동료들과 티타임을 가지던 중 실험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다시 실험실로 향하는 일은 흔한 풍경이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장비 오류나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대비해 자발적으로 야간 근무를 선택하기도 하며, 이는 강제나 부담이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으로 인식된다. 두 번째로, 인원이 제한되어 있다는 점도 야근이 일반화되는 이유 중 하나다. 여름철에는 60~80명, 겨울에는 20~30명 정도로 운영되는 기지 특성상 한 사람이 복수의 역할을 맡는 일이 많다. 과학자가 실험뿐 아니라 설비 점검, 통신 관리, 기상 관측까지 담당하는 등 다기능 인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느 한 역할이 지체되면 전체 기지의 운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야근은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공동체 유지를 위한 유동적 시간 운영 방식인 셈이다. 세 번째는 ‘몰입’이다. 남극에서의 실험은 보통 수개월간 이어지는 프로젝트이며, 일부는 수년 단위의 데이터 축적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실험 중단이나 일정 지연은 전체 연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연구원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는 프로젝트일수록 자발적으로 야간까지 작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몰입은 도시에서의 피로 누적과는 성격이 다르며, 오히려 성취와 동기 부여로 연결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환경에서의 야근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료 간의 배려 문화가 생긴다. 밤늦게까지 남아 있는 동료에게 따뜻한 음료를 챙기거나, 같이 남아 작업을 도와주는 일은 일상이 된다. 외부와 고립된 환경에서는 이러한 유대감이 피로를 상쇄하고, 정신적 안정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처럼 남극의 야근은 ‘과중한 노동’이라기보다, 공동체, 책임, 연구에 대한 몰입이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일의 연장선’이며, 개인의 의지와 협력이 함께 작용하는 매우 독특한 근무 문화다.
야근 이후를 고려한 피로 관리와 회복의 시스템
아무리 자발적이라고 해도 야근이 반복되면 피로가 누적된다. 특히 해가 지지 않는 백야 시기에는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인원이 많고, 수면 부족은 집중력 저하와 감정 기복, 우울 증세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남극 기지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피로와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있다. 우선 기본적인 근무 시스템이 교대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야간 업무를 수행한 인원은 다음날 오전 일정에서 제외되거나 자유시간으로 대체된다. 2026년 현재 세종기지에서는 AI 기반 수면 분석 앱을 도입해 구성원들의 수면 상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주간 리듬에 맞춰 일정 조정 권고가 이뤄지고 있다. 또한 조명 시스템은 인간의 멜라토닌 분비 리듬에 맞춰 색온도와 밝기를 자동으로 조절하며, 수면 유도 음악이나 블루라이트 차단 장치도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심리적 지원도 강화되고 있다. 극지 생활은 사회적 단절과 외로움이 크기 때문에, 매주 정기적인 온라인 심리 상담이 운영되고 있으며, 명상, 요가, 감정일기 작성 등 다양한 정신 건강 프로그램이 일과 중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기지에서는 ‘피로를 미리 막자’는 예방 중심의 근무 원칙을 강조하고 있고, 야간 업무 이후에는 식단 보충, 휴식 유도, 대화 중심 활동이 권장된다. 특히 주말에는 모든 정기 업무가 중단되며, 실험이나 회의도 금지된다. 이 시간을 이용해 구성원들은 영화 상영, 게임 나이트, 자율 운동, 베이킹 클래스 등 취미 활동에 참여하며 긴장을 해소하고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그 누구도 주말 동안 업무 관련 메시지를 주고받지 않는 것은 기지 내 불문율처럼 자리 잡았다. 이처럼 남극의 야근은 단지 업무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회복이 반드시 보장되는 구조 안에 존재한다. 단기적인 효율보다 장기적인 생존과 공동체 유지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무리한 야근은 오히려 금지되며, 필요한 시간에 몰입한 뒤 충분히 회복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도시에서 소진되어 가는 방식의 야근이 아닌, 함께 감당하고 함께 회복하는 삶의 일부로서의 야근. 그것이 바로 남극에서의 ‘일’이다. 남극 기지에서도 야근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야근은 도시처럼 과로의 상징이 아니다. 극지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과학적 실험을 완수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책임의 시간’이자,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일하는 ‘연대의 순간’이다. 시계가 아닌 자연과 과학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는 남극의 일상 속에서 야근은 단지 늦은 시간이 아니라, 더 깊이 몰입하고, 함께 버티는 법을 배워가는 또 다른 방식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