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은 세계 과학자들이 지구의 기후 변화, 해양 생태계, 대기 구성 등 지구 전체 시스템을 연구하기 위해 모이는 거대한 국제 과학 무대입니다. 각국은 자국의 전략적 이익과 과학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남극 기지에 연구 인력을 파견하고 있으며, 그 규모와 운영 방식은 국가별로 상이합니다. 본 글에서는 주요 국가들의 남극 연구 인력 규모와 운영 체계를 비교 분석하여, 세계 극지 과학의 흐름과 한국의 위치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의 대규모 인력 운영 체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력을 남극에 파견하는 국가는 미국입니다. 미국은 남극에 총 3개의 주요 상설 기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맥머도 기지(McMurdo Station)는 최대 1,200명 이상이 동시에 근무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극지 과학 기지입니다. 여름철(11월~2월)에는 약 1,000명 이상, 겨울철에도 250명 이상이 상주하며 기후, 생물, 빙하, 해양 분야의 다양한 연구가 진행됩니다. 러시아 역시 남극 탐사에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약 10개의 연구 기지를 운영 중입니다. 대표적인 보스토크 기지(Vostok Station)와 미르니 기지(Mirny Station)에는 연간 수백 명의 과학자와 기술 인력이 배치되어 있으며, 내륙 깊숙한 지역에 위치한 보스토크는 극한 환경을 이겨내는 장비 운용 능력과 생존 기술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장소입니다. 중국은 비교적 최근에 남극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현재 장성기지(Great Wall Station), 중산기지(Zhongshan Station), 곤룡기지(Kunlun Station), 태산기지(Taishan Station) 등 4개의 기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약 300~500명의 연구 인력을 순환 배치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자체 쇄빙선과 위성통신망을 구축해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남극 활동이 가능한 체계를 마련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과학뿐 아니라 정치·외교적 존재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유럽 주요국과 한국의 중형 규모 운영 방식
유럽 주요국은 공동 기지 운영 및 국제 협력을 통해 남극 연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공동으로 콩코르디아 기지(Concordia Station)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 기지는 남극 중심부의 도미 후마나 고원에 위치해 고지대 대기와 천문 관측 연구에 최적화된 장소입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은 개별 기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력 규모는 여름철 기준으로 각 기지당 약 50~100명, 겨울철에는 10~30명 수준으로 축소되어 운영됩니다. 영국의 할리 기지(Halley VI Research Station)는 극지 구조물 설계의 모범 사례로, 모듈형 구조와 이동형 설계가 특징입니다. 이 기지에서는 연간 60~70명의 연구원이 근무하며, 최근에는 해양 기후와 오존층 관련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1988년 남극 킹조지섬에 세종기지를 설립하며 남극 과학 연구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2014년에는 동남극의 테라노바만에 장보고기지를 추가로 개설하면서 두 개의 상설 기지를 운영하는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세종기지는 여름철에 약 60명, 겨울철에 17~18명의 연구원이 상주하며, 장보고기지는 여름철에 약 80명, 겨울철에 23명 내외의 인원이 배치됩니다. 한국 극지연구소(KOPRI)는 매년 극지연구선 아라온호를 이용해 남극 기지로 인력을 수송하며, 지질, 대기, 해양, 생물 다양성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팀을 파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규모는 중형이지만 장비, 국제 협력 수준, 데이터 분석 능력 등에서 선진국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내고 있으며, 아시아권에서는 중국, 일본과 함께 주목받는 극지 연구국입니다.
소규모 국가들의 계절별 운영 및 국제 협력 사례
규모는 작지만 지속적인 남극 참여를 이어가는 국가들도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상설 기지보다는 계절 운영 기지를 중심으로 소규모 인력을 파견하며, 다국적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극지 과학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벨기에의 프린세스 엘리자베스 기지(Princess Elisabeth Station)는 세계 최초의 탄소 중립 남극 기지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통해 자체 전력을 생산합니다. 연간 20~40명의 과학자와 기술진이 여름철에만 활동하며, 에너지 자립형 극지 기지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브라질은 페라스 기지(Comandante Ferraz Station)를 통해 매년 60명 내외의 인력을 파견하며,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가장 활발한 남극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스콧 기지(Scott Base)를 통해 인접국 호주와 협력하며 여름철에는 약 100명 이상, 겨울에는 10~15명이 근무합니다. 뉴질랜드는 남극의 생태계 보존, 해양 생물학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남극 조약 체제 내에서도 중견 과학국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소규모 국가들은 대형 국가의 기지를 임시로 사용하는 협력 모델을 통해 남극 연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체코는 벨기에 기지를 활용하거나 국제 프로젝트에 연구 인력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남극 연구에 기여하고 있으며, 대만, 인도, 터키 등도 최근 남극 탐사에 참여를 확대하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협력 모델은 인프라 투자 부담을 줄이면서도 과학적 기여를 가능하게 해주며, 남극 과학의 국제 공동체 정신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남극 연구 인력의 규모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과학 기술력, 정책 의지, 국제 협력 수준을 반영하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각국이 어떤 방식으로 남극에 참여하고 있으며, 자국의 전략적 목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극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단서가 됩니다. 한국은 이미 세계적 수준의 극지 연구 인프라와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욱 적극적인 국제 공동 연구와 데이터 공유를 통해 글로벌 극지 과학의 중심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