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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소와 남극 연구소의 업무환경 차이

by newinfo5411 2026. 1. 5.

국내 연구소와 남극 연구소의 업무환경 차이 관련 사진

“연구소에서 일한다고?” 누군가가 묻는다. 그 말 속에는 ‘하얀 가운을 입고 책상 앞에 앉아 복잡한 수식을 푸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맞다. 서울 외곽의 연구 단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며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상. 하지만 남극의 연구소, 즉 극지 기지에서의 삶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똑같은 '연구소'지만, 그곳은 하나의 사회이자 생존을 위한 집단이며, 모든 것이 연결된 생태계다. 국내 일반 연구소와 남극 연구소, 겉으론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그 안에서의 ‘일’은 완전히 다르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국내 연구소 vs ‘현장’에 맞춰 유기적으로 변하는 남극 기지

국내 연구소의 가장 큰 특징은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연구 프로젝트마다 명확한 목표와 일정이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연구원들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한다. 각자의 책상이 있고, 출퇴근 시간이 있으며, 필요한 장비는 대체로 쉽게 구할 수 있다. 실험 환경은 안정적이고, 문제가 생기면 즉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전력, 통신, 안전, 심리적 공간까지 모든 것이 ‘잘 갖춰진’ 상태에서 업무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남극에선 그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실험을 진행하는 시점도, 야외 활동이 가능한지의 여부도 모두 자연이 결정한다. 하루가 맑다고 해도 갑작스러운 눈보라가 몰아칠 수 있고, 강풍주의보가 뜨면 어떤 작업도 불가능해진다. 그 때문에 남극에서는 ‘계획’보다는 ‘대응’이 중요하다. 실험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하루하루의 기상 상황을 보고 그날 해야 할 일을 현장에서 바로 정한다. 내가 장보고과학기지에서 근무했을 당시, 2주간 준비한 해양센서 투입 작업이 당일 기상 악화로 전면 취소된 적이 있었다. 실망감은 컸지만, 그게 남극이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기다릴 뿐이다. 남극에서의 근무는 단순히 ‘업무 처리’가 아니다. 에너지 관리, 폐기물 분리, 물 사용량, 심지어 샤워 시간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기지 운영 자체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전기를 낭비하거나 장비를 무리하게 가동하면, 전체 기지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그 여파는 모든 사람에게 돌아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체를 보는 눈’이 생긴다. 자신이 한 행동이 기지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끊임없이 고려해야 한다.

전문화된 역할 분담 vs 다기능 융합형 인간

국내 연구소에서는 보통 자신이 맡은 분야에만 집중하면 된다. 기기 문제가 생기면 기술팀이 오고, 통신 오류는 IT팀이 처리하며, 행정 업무는 지원 부서가 담당한다. 팀 간 협업은 필요하지만, 각자의 전문성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 그 덕분에 효율적이고, 한 분야에 몰입하기 좋다. 하지만 남극에서는 연구원 한 명이 다섯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이 다반사다. 연구자이자 장비 기술자, 간이 정비공, 심지어 간호사나 심리상담사 역할까지. 예를 들어, 기상 관측을 하던 중 자동기록장치(데이터로거)가 고장 나면, 교체 부품이 없는 상황에서 직접 회로를 뜯고 납땜까지 해야 한다. 한 번은 실험 중간에 위성통신기 오류가 나서, 통신 엔지니어가 아닌 내가 직접 매뉴얼을 찾아가며 안테나 정렬을 조정해야 했던 적도 있었다. 남극에서 요구되는 것은 ‘한 분야의 전문가’보다도 ‘기초는 모두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파견 전에는 생존 훈련, 장비 교육, CPR, 응급처치, 화재 대피 등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제 상황에서 쓰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인간적으로도 큰 성장 기회였다. ‘나는 이것만 잘하면 돼’라는 태도는 남극에선 통하지 않는다. 나 하나의 실수가 모두의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에 대한 책임감이 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남극은 ‘혼자 일하는 사람’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실외 작업은 반드시 2인 1조 이상으로 움직여야 하며, 내부에서 이뤄지는 작업도 항상 상호 확인을 거쳐야 한다. 국내 연구소에선 집중을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시하지만, 남극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안정의 핵심이다.

심리와 관계의 무게가 다른 두 공간

국내 연구소에서의 인간관계는 비교적 단선적이다. 같은 팀,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들끼리 협업하고, 퇴근 후에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불편한 관계가 있다면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수 있고, 일정 정도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 하지만 남극에서는 불편한 관계도 매일 얼굴을 봐야 하고,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일해야 한다. 그야말로 ‘회피 불가’의 환경이다. 이 때문에 남극에서는 사람 간의 감정 조절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단순한 말투 하나, 식사 자리의 눈빛 하나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래서 기지에서는 일종의 ‘심리적 에티켓’이 있다. 예를 들어, 식사 중엔 민감한 정치 이야기나 종교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회의 후엔 반드시 간단한 피드백을 교환한다, 주말엔 무조건 쉬는 시간을 갖는다 등. 이런 규칙이 없으면 사소한 갈등이 쉽게 커질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건, 이런 불편한 상황 속에서도 진짜 친밀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함께 야외 실험을 하며 바람을 맞고, 어둠 속에서 장비를 찾고, 눈보라 속에서 체온을 나누며 돌아오는 그 경험은, 설명하기 어려운 연결감을 만든다. 내가 겪은 남극 겨울, 3일간 통신이 끊긴 적이 있었는데, 모두가 모여 앉아 각자의 노래를 부르고, 라면을 나눠 먹으며 웃던 그 밤을 아직도 기억한다. 연구라는 명분을 넘어선, 인간다운 순간이었다. 남극의 생활은 ‘일과 삶의 경계’가 없다. 업무 중이든 쉬는 중이든, 늘 같은 사람들과 있고, 같은 공간 안에서 움직인다. 그만큼 배려와 조화가 중요하다. 국내에선 별문제 아닌 말 한마디도, 남극에선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작은 관심 하나가 큰 위로가 된다. 연구성과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이다. 국내 연구소와 남극 기지는 둘 다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세계다. 국내 연구소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 속에서 전문성에 몰입할 수 있는 곳이라면, 남극 기지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환경과 함께 살아남는 방식을 배우는 곳이다. 한쪽이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둘 중 어디에서 일하든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건 분명하다. 남극은 나를 성장시켰고, 국내는 그 성장을 다듬게 해준다. 그리고 그 균형이 결국 더 좋은 과학자, 더 좋은 사람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