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궁금증을 자아낸다. 하지만 뉴스나 공식 보도자료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진짜 이야기’, 즉 현장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의 솔직한 목소리는 대중이 남극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이 글에서는 2026년 현재 세종기지 및 장보고기지에서 근무 중인 실제 연구원과 스태프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들이 경험한 현실, 감정, 그리고 앞으로의 삶까지 조명해본다.
“여긴 그냥 추운 곳이 아니라, 다른 행성이에요”
2026년 1월, 세종기지에서 기상관측을 담당하고 있는 김도윤 연구원은 인터뷰 첫 마디를 이렇게 시작했다. “여긴 그냥 추운 곳이 아니에요. 바람, 빛, 소리, 모든 게 서울과 완전히 다릅니다. 처음 왔을 땐 내가 지구의 다른 행성에 온 줄 알았어요.” 그의 말처럼 남극은 단지 날씨가 추운 장소가 아니라, 감각의 기준 자체가 바뀌는 환경이다. 그는 새벽 5시에 기지 밖으로 나가 온도와 바람 데이터를 측정하는 일과를 반복한다. “얼굴에 눈이 닿는 순간 따갑다 못해 얼얼하죠. 장갑을 벗으면 손가락 감각이 금방 사라져요. 그런데도 이 환경에서 데이터 하나하나를 쌓아가는 게 정말 보람 있어요.”라고 말하며, 연구자로서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의 장비는 늘 체온보다 차갑고, 셔터를 누르는 손끝은 감각을 잃기 일쑤지만, 그 속에서도 그는 ‘남극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몸으로 겪고 있다. 또 다른 인터뷰이, 장보고기지에서 해양 생태계를 연구 중인 이정민 박사는 남극의 ‘침묵’을 이렇게 표현했다. “진짜 조용해요. 귀를 막은 것처럼. 사람 소리, 기계 소리 외엔 아무것도 안 들리는 순간이 있죠. 그 정적이 때론 무서울 정도로 깊어요. 하지만 그만큼 내면과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요. 그래서 여길 다녀오면 인생관이 바뀌는 사람도 많죠.” 그는 극지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자기 성찰의 깊이가 깊어졌다고도 말했다. 이처럼 극지에서의 일상은 ‘극한의 자연’만이 아니라, 인간 내부의 경험까지 확장된다. 물리적 조건 이상으로, 감정적 적응이 가장 큰 과제라는 점을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견뎌낸 이들의 말 한마디에는, 숫자나 데이터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간적 무게’가 담겨 있다.
“편의점, 카페, 인터넷 쇼핑? 꿈도 못 꿔요”
남극 근무는 많은 이들이 상상하는 낭만적인 탐험과는 거리가 멀다. 기지 내 생활은 한정된 공간과 자원 속에서 철저하게 자급자족하며 이뤄진다. 실제 세종기지에서 식품 보급과 운영 관리를 맡고 있는 박지훈 대원은 이렇게 전했다. “가장 그리운 건 편의점이죠. 컵라면, 삼각김밥, 탄산음료 같은 게 진짜 간절해요. 여기선 간식 하나도 팀원끼리 나눠 먹는 문화가 있어요. 그만큼 귀하니까요.” 기지 내 식사는 주로 냉동 식자재로 구성된다. 때때로 제공되는 신선식품은 물류가 가능한 극히 일부 기간에만 들어오기 때문에 매우 귀하다. 이 때문에 팀원들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과일이 들어오는 날’이다. “한 사람이 바나나 한 개 받는 날, 다들 사진 찍고 자랑해요. 별거 아닌데 진짜 큰 선물처럼 느껴지거든요.”라고 말한 그는, 남극이라는 환경이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쇼핑과 여가생활도 극도로 제한적이다. 인터넷은 위성망을 이용하지만, 속도가 매우 느려 영상 스트리밍은 꿈도 꾸기 어렵다. “가끔 웹페이지 하나 여는 데 1분 넘게 걸릴 때도 있어요. 유튜브는 로딩조차 안 돼요.”라고 말하며, 디지털 환경에서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강조했다. 대신 많은 연구원들이 저녁 시간에는 책을 읽거나 일기 쓰기, 팀원과의 보드게임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SNS를 멀리하고, 내 삶을 천천히 돌아보게 되죠. 남극은 의외로 ‘디지털 디톡스’에 완벽한 장소예요.”라고 말한 한 대원의 말은 극지에서의 생활이 불편함을 넘어서 ‘자기 회복’의 기회로도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정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창의적으로 일상을 만들어가며, 그 자체가 ‘극지 생활의 기술’이 되어 간다.
“돌아가면 뭐든 다 감사하게 돼요”
남극에서의 삶은 물리적으로 고단하지만, 심리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준다. 세종기지 의무를 담당하는 이현정 대원은 “처음엔 불안도 있었어요. 다치면 병원도 없고, 멀리 떨어진 가족 생각도 많이 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 게 견딜 수 있게 돼요. 오히려 돌아가면 모든 게 감사하게 느껴져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장비가 부족한 환경에서도 기본적인 응급처치를 스스로 판단하고 처리해야 했고, 이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남극에서 일정 기간을 보내고 돌아온 연구원들은 극지 근무가 삶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전환점이었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 예컨대 따뜻한 샤워, 휴대폰 속도, 택배, 친구와의 커피 한 잔이 모두 기적처럼 다가온다는 것이다. “서울 돌아와서 편의점 갔을 때, 눈물 나더라고요. 이렇게 밝고 따뜻한 공간이 있다는 게 감사했어요.”라는 말은 남극이 남기는 감정의 잔상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남극에서 맺는 인간관계 역시 독특하다. 함께 고립된 공간에서 장기간 지내기 때문에 서로를 깊이 이해하게 되고, 신뢰도 매우 높다. “여기서 생긴 인연은 평생 갑니다. 고된 시간 속에서 함께 견뎌낸 사람이라는 건 정말 특별하거든요.”라고 한 대원은 말했다. 갈등이 생겨도 곧장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은 오히려 관계를 단단하게 만든다. 이들은 남극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동시에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법’도 다시 배우게 된다. 그리고 돌아온 이후 그 경험은 일상에서도 깊은 공감력과 적응력으로 이어진다. 남극은 결국 그들에게 자연과 과학을 넘어서 ‘자기 자신과 인간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극지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과학자가 아니다. 그들은 도전가이며, 생존자이며, 사색가이자 협업가다. 이들의 리얼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남극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인간적일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낀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과학은 숫자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