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5일, 온 세상이 반짝이는 불빛과 캐롤로 가득한 그 날, 남극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다른, 혹은 어쩌면 더 따뜻할지도 모를 그날의 풍경. 가족도 친구도 없는 영하 40도의 고립된 땅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를 축하하고 위로할까? 이 글에서는 남극 기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의 일상, 연구원들의 감정, 작지만 특별한 이벤트들을 중심으로,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극지 생활을 들여다본다.
남극의 크리스마스, 한여름이 시작되는 계절
남극은 북반구와 정반대 계절을 가진다. 우리가 패딩을 껴입고 눈 오는 거리를 걷는 동안, 남극은 여름을 맞는다. 하지만 ‘여름’이라고 해서 따뜻하거나 눈이 없는 건 아니다. 평균 기온은 여전히 영하권이며, 바람은 매서우며, 하늘은 찬빛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남극의 크리스마스는 ‘백야’ 속에서 맞이하는 축제라는 점이 특별하다. 밤 11시에도 태양이 지지 않기에, 조명으로 연출한 분위기보다 ‘햇빛 아래에서의 크리스마스’라는 이질적인 감각이 공간을 감싸게 된다. 남극 기지에서는 대체로 12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천천히 만든다. 조명 장식을 하기도 어렵고 외부 장비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종이 장식이나 손글씨, 포스터 등을 제작해 내부를 꾸민다. 연구원들이 직접 준비한 소규모 트리, 공동 식사 계획, 기지장님의 크리스마스 메시지 등이 이 시기를 특별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를 위한 자발적인 노력과 마음이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날만큼은 서로를 위한 시간으로 만들자”는 마음이 공유된다. 사소한 캔디 하나, 누군가 몰래 남긴 카드 한 장이 꽤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날. 남극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아주 작은 것들로 가득 찬 하루다.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기지 내에서는 '백야 속 불빛'이라는 테마로 직접 만든 조명 장식을 달기도 한다. 비록 전력 사용이 제한적이라 LED 몇 개뿐이지만, 구성원들은 그 불빛 하나에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상상하며 서로 미소 짓는다. 또한 트리 대신 주변에서 수집한 자재, 남은 목재, 실험 장비 박스 등을 재활용해 장식하는 창의적인 풍경도 종종 등장한다. 남극에서는 무엇이든 스스로 만들어야 하기에 오히려 그 DIY 정신이 기지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매개가 된다.
고립된 기지, 모두가 가족이 되는 하루
가족과 떨어져 있는 모든 명절이 그렇듯, 크리스마스는 남극 생활자들에게 유독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날이다. 특히 첫 크리스마스를 남극에서 맞는 파견자들은 그 이질감과 공허함을 크게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감정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서 특별한 유대가 만들어진다. 연구원들은 이 날만큼은 실험과 업무 일정을 잠시 멈추고, 함께 모여 공동 식사를 한다. 누군가는 몇 주 전부터 디저트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해외에서 보내온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번역해 다 함께 읽는다. 인터넷 연결이 원활할 경우, 가족과의 짧은 영상 통화를 위해 순번을 정해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남극의 크리스마스에는 특별한 드레스코드도 있다. 누군가는 산타 모자를 쓰고, 누군가는 전통 의상을 준비해 입기도 한다. 혹은 각자 태어난 지역의 음식이나 문화를 소개하는 시간이 열리기도 한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는 단지 '기념일'이 아닌, 극한의 공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날로 의미가 확장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날이 마음이 연결되는 날이라는 것이다. 극한 환경에서는 말 한마디, 눈빛 하나가 관계를 결정짓는 경우가 많다. 크리스마스는 그런 관계의 끈을 조금 더 따뜻하게 조여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일부 연구원들은 가족에게 보낼 편지를 미리 작성해 극지연구소를 통해 전달하거나, 짧은 영상 메시지를 녹화해 이메일로 보내는 준비를 한다. 이 작은 행위는 남극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향한 연결을 이어가려는 따뜻한 몸짓이다. 공동 식사 자리에서는 각자의 가족이나 고향에서 먹는 특별한 음식 이야기를 나누며, 마치 전 세계의 다양한 크리스마스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은 듯한 정서가 퍼진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서로의 가족이 되는 셈이다.
진짜 선물은, 서로를 기억하는 마음
남극에서의 크리스마스에는 거창한 선물이 없다. 택배도 오지 않고, 상점도 없고, 배송 지연도 몇 달 단위다. 그래서 이곳의 선물은 대부분 손으로 만든 것, 혹은 마음으로 준비한 것이다. 누군가는 손수 뜬 모자나 목도리를 건넨다. 누군가는 손편지를 써서 연구 동료의 책상 위에 놓는다. 기지 안 어딘가에 '비밀 산타함'을 만들어, 서로 익명으로 소소한 것들을 나누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남극이 아니면 하기 힘든, 불편함 속에서 피어난 진짜 인간적인 교류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작은 영화 상영회나 음악 감상회가 열리기도 한다. 어느 해에는 기타와 리코더로 캐롤을 직접 연주하는 즉석 공연이 열렸고, 다른 해에는 영상 편지를 만들어 가족에게 보내기도 했다. 정해진 프로그램이 아니라, 모두가 자발적으로 준비하는, 진짜 ‘우리만의 행사’가 되는 것이다. 남극에서의 크리스마스는 그래서 외롭지 않다. 오히려 그 고립 속에서 더욱 서로를 깊이 바라보게 되며, 진짜 선물은 결국 '서로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임을 모두가 체감하는 하루다. 이날 주고받는 가장 흔한 선물은 따뜻한 말 한마디나 소소한 배려다. 실험실 앞에 초콜릿 하나를 살짝 놓아두거나, 식판 위에 작은 쪽지를 남기는 식의 깜짝 이벤트는 남극의 크리스마스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한 해에는 연구원이 직접 만든 캐롤송 리믹스를 기지 라디오로 송출했고, 다른 해에는 모두가 각자의 꿈을 한 줄씩 적어 '남극 소망 트리'에 붙이기도 했다. 남극의 크리스마스는 결국,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사물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남극에서의 크리스마스는 화려하지 않다. 트리도 작고, 불빛도 약하고, 선물도 없다.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 마음이 깊게 연결되는 하루다. 극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웃음, 직접 쓴 카드 한 장, 함께 나누는 밥 한 끼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다시 이어주는 감정의 끈이 된다. 추위 속에서 빛나는 건 따뜻함이다. 남극은 그 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