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과 같은 극지 환경의 겨울은 수개월간 해가 뜨지 않는 극야(極夜)로 뒤덮인다. 긴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연구원들에게 있어 해가 뜨는 순간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감정의 해방이며 생존의 기념일과도 같다. 이 글에서는 극야가 무엇인지, 해 뜨는 날이 왜 특별한지, 그리고 실제 남극 기지에서 해를 맞이한 연구원들의 이야기까지 함께 담아본다.
극야란 무엇인가? 어둠 속의 시간들
남극의 겨울철은 수개월간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그리고 해가 뜨지 않는 극야로 나뉜다. 극야는 남극권(남위 66.5도 이하)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자연 현상으로, 보통 3~4개월간 해가 완전히 지지 않거나, 완전히 뜨지 않는 시기를 의미한다. 남극의 대표 기지인 세종기지는 남위 62도에 위치해 있어 극야는 경험하지 않지만, 더 남쪽에 위치한 아문센-스콧 기지(미국)나 벨링스하우젠 기지(러시아)에서는 극야가 수개월간 이어진다. 이 시기 동안 하늘은 하루 종일 어둑하거나, 희뿌연 새벽빛만 비치고 사라지며, 햇빛 없는 생활은 연구원들의 생체 리듬과 정신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낮과 밤의 개념이 무너지고, 시간 감각이 흐려지며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극야 기간 동안에는 정해진 루틴, 조명 관리, 비타민 D 섭취 등이 권장된다. 기지 내에서는 인공 햇빛 조명을 통해 규칙적인 ‘낮’을 만들어내려는 시도가 계속되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 공동 운동, 정해진 식사 시간 등이 어둠 속 리듬 유지의 열쇠가 된다. 이러한 긴 어둠 속에 있다 보면, 햇빛에 대한 그리움은 마치 존재의 갈증처럼 깊어지게 된다. 극야가 길어질수록 연구원들은 자연스럽게 ‘빛’을 의식하게 된다. 창밖을 바라보는 횟수가 줄어들고, 대신 시계와 일정표에 더 의존하게 되며, 하루의 흐름을 인공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늘어난다. 이 시기에는 사소한 감정 변화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동료 간의 배려와 소통이 평소보다 더욱 중요해진다.
해가 뜨는 순간, 기지 전체가 멈춘다
극야가 끝나고 처음으로 해가 떠오르는 날은, 남극 기지에서 가장 감동적인 행사 중 하나다. 기지 내 모든 인원이 해 뜨는 방향의 바깥으로 모여든다. 그 순간은 누구도 말을 하지 않는다. 추운 바람 속에서 멀리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작은 빛을 바라보며, 모두가 숨을 멈추고 그 순간을 조용히 기다린다. 단 5분, 어쩌면 10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순간은 마치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하다. 그 빛이 얼굴을 스치고, 눈에 반사될 때 어떤 연구원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살아 있음을 다시 느낀다.” “이 빛을 보기 위해 견뎠구나.” 이런 감상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일부 기지에서는 해 뜨는 날을 기념해 'Sunrise Ceremony(일출 의식)'를 열기도 한다. 따뜻한 음료를 나누고, 지난 극야의 기억을 되새기며 새로운 태양을 맞이하는 짧은 연설이 이어진다. 이런 전통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되새기게 하며, 빛 하나로도 서로의 존재를 다시 연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키워준다.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이 날을 ‘두 번째 새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둠에서 빛으로 넘어가는 전환점, 그 자체가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이다. 이날의 일출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기보다는, 눈과 마음으로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카메라를 들지 않고 그저 하늘을 바라보며, 그동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조용히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기도 한다. 그래서 해 뜨는 날의 기억은 각자 마음속에 오래 남는 장면으로 자리 잡는다.
해가 인간에게 주는 힘
햇빛은 단순한 광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체 리듬을 조절하고, 정신적 안정을 주는 생명의 신호다. 남극처럼 절대적인 고립과 어둠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햇빛은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상징이 된다. 실제로 극야 동안 우울감, 무기력증, 수면장애를 겪는 연구원이 많으며, 햇빛이 돌아온 이후 우울 지수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즉, 빛은 단지 세상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밝히는 역할을 한다. 어떤 연구원은 “처음 해가 떴을 때, 기지 전체가 살아났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표현했다. 잠자던 에너지가 깨어나고, 사람들의 말수도 늘어나며, 눈빛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단 한 줄기의 빛이 이토록 큰 감정의 파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동안 어둠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이 억눌려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남극에서 해 뜨는 날은, 단지 하늘이 밝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밝아지는 날이기도 하다. 남극에서 맞는 일출은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빛이 사실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극야를 지나 첫 빛을 맞이하는 순간, 연구원들은 인생에서 가장 고요하고, 뜨거운 감동을 경험한다. 그 빛은 어둠을 밀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 두려움과 외로움까지도 몰아내며, 그 자리에 희망과 연결, 그리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심어준다. 남극에서 해가 뜨는 날, 그것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간다움이 회복되는 순간이다. 빛이 돌아온 이후에는 기지 분위기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긴다. 식사 시간의 대화가 늘어나고, 웃음소리가 많아지며, 새로운 계획이나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오르내린다. 햇빛은 단순히 몸을 깨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에너지까지 함께 되살리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