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한의 추위, 고립된 공간, 제한된 자원. 이런 환경에서도 남극 기지의 연구원들은 매일 식사를 한다. 남극 기지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생존을 넘어, 정서적 안정과 팀워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연 영하 50도에 가까운 혹한 속에서 음식은 어떻게 조리되고, 어떤 방식으로 구성될까? 2026년 현재의 남극 기지 식사는 과학과 기술, 사람의 정성이 모두 녹아 있는 독특한 시스템이다. 이번 글에서는 남극 기지의 식단 구성, 조리 환경, 그리고 연구원들의 식사 문화를 중심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남극 기지의 식단은 어떻게 구성될까?
남극 기지에서는 모든 식재료가 한국 본토에서부터 사전 준비된다. 한국의 극지연구소는 연 1~2회 보급선과 항공편을 통해 남극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로 식재료를 운송하는데, 이 작업은 수개월 전부터 시작된다. 영양사와 조리사, 운영 담당자들이 협업해 월 단위 식단을 짜고, 거기에 맞춰 수백 종의 식재료를 냉동, 냉장, 건조, 진공포장 형태로 준비한다. 이 식재료들은 주로 곡류, 육류, 해산물, 채소, 김치, 장류, 유제품, 인스턴트 식품, 조미료 등으로 구성되며, 일부 고급 식재료나 과일, 디저트류는 특별 일정을 통해 추가 반입된다. 남극이라는 환경 특성상, 식단은 기본적으로 ‘고열량, 고단백, 고지방’ 위주로 설계된다. 연구원들의 기초대사량이 일반인보다 평균 10~20% 이상 높고, 야외활동이 많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권장 섭취 칼로리는 3,000~3,500kcal 수준이며,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고기 반찬 비중이 높고, 국물 음식과 쌀밥 중심의 식사가 유지된다. 예를 들어, 아침은 밥과 국, 계란찜, 햄, 김치와 나물 위주의 한식 위주이며, 점심은 덮밥, 비빔밥, 국수, 찌개류 등으로 다양성을 더한다. 저녁은 비교적 정갈한 찬 구성으로 나가며, 일주일에 한두 번은 커리, 파스타, 돈가스, 피자, 햄버거 등 퓨전 및 양식 메뉴도 등장한다. 김치는 장기간 저장 가능한 포장김치를 사용하며, 된장, 고추장, 간장 등은 한국산을 그대로 반입해 조리사가 직접 양념해 사용한다. 또, 식단에는 ‘심리적 만족’을 고려한 요소도 포함된다. 휴일에는 특별 메뉴가 제공되고, 생일인 대원에게는 케이크와 축하 음식을 준비하는 문화도 정착되어 있다. 때로는 연구원들의 요청으로 즉석 짜장면, 떡볶이, 라면 파티 등도 열리며, 이는 단절된 환경 속에서 큰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한다. 한마디로, 남극의 식단은 생존 그 이상으로, ‘한국인의 정체성과 위로’를 담은 구성이라 할 수 있다.
혹한 속 조리 환경, 어떻게 운영될까?
남극의 기온은 겨울철 기준 영하 40~50도, 여름에도 영하 10도 이하로 유지된다. 실외 환경에서의 조리는 불가능하며, 기지 내부에 마련된 ‘중앙식당’에서 모든 조리가 이뤄진다. 중앙식당은 밀폐 구조의 위생 구역이며, 일반 식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술적 조건이 필요하다. 조리 공간은 24시간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며, 고기, 생선, 채소, 가공품 등은 종류별로 보관 구역이 나뉘고, 냉장고 및 냉동고는 이중 온도 조절 장치를 갖추고 있다. 또한, 물은 자체 정수시스템으로 생산된다. 주로 얼음을 녹이거나 바닷물을 여과해 식수로 사용하며, 물 절약이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에 식기 세척도 고성능 스팀 세척기를 활용한다. 조리 기기는 산업용 가스레인지, 대형 오븐, 전기밥솥, 김치냉장고, 스팀 조리기 등이 사용되며, 모든 기기는 영하의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도록 특별 제작되거나 사전 테스트를 거쳐 들여온다. 조리사들은 보통 2~3명이 1개 기지에 파견되며, 하루 평균 3끼×20인분 이상을 준비해야 하므로, 업무 강도가 높다. 이들은 하루 전부터 다음 날 메뉴 준비를 시작하며, 냉동 식재료를 해동하고, 다듬고, 조리와 저장을 반복한다. 고기가 얼어 있어 써는 데만 몇 시간이 걸릴 때도 있고, 냉동 생선을 손질하다 손이 얼어 감각을 잃는 사례도 있다. 특이한 점은 ‘위생과 방역’의 중요성이다. 남극은 의료 인프라가 제한적이므로, 식중독 예방이 절대적이다. 조리 공간은 하루 2회 이상 소독되며, 식자재 개봉 후 즉시 라벨링과 유통기한 기록이 이뤄진다. 재료는 중복 사용을 피하고, 남은 음식은 별도 처리된다. 조리사들은 마스크, 위생모, 장갑 착용이 기본이며, 조리 도중에도 위생 검사기를 사용해 실시간으로 온도와 오염 여부를 체크한다. 이처럼 남극의 조리 환경은 과학과 정성, 위생이 결합된 철저한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리사 한 명 한 명이 ‘생존 관리자’ 역할을 수행한다.
남극 기지 식사의 의미와 식사 문화는?
남극에서의 식사는 단지 배를 채우는 시간을 넘어선다. 하루 세 끼는 기지 생활의 리듬을 만드는 가장 핵심적인 시간이다. 특히 고립과 단절, 감정 기복이 심한 남극 근무 환경에서 식사는 유일하게 팀원 전원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감 공간’이다. 기지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마다 사이렌이 울리며 식사 시간이 시작된다. 모든 인원은 공용 식당에 모여 한 상에서 식사하며, 식사 중 자연스럽게 오늘의 날씨, 관측 상황, 실험 진행 상황, 혹은 개인적인 소소한 이야기가 오간다. 식당 한편에는 ‘자유 간식 코너’가 마련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라면, 믹스커피, 과자, 견과류, 핫초코 등이 비치되어 있어 식사 외에도 간단한 간식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명절이나 기념일에는 ‘테마 식사’가 진행되며, 설날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과 전, 크리스마스에는 칠면조 구이, 와인, 케이크 등이 준비된다. 이 외에도 연구원 개인 생일에는 조리사가 직접 케이크를 굽거나, 동료들이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기도 한다. 이러한 식사 문화는 팀워크 형성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는 갈등이 쉽게 커질 수 있으나, 함께 웃고 먹는 식사 시간은 그 자체로 심리적 안전망이 된다. 또, 일부 연구원은 본인의 요리 특기를 발휘해 ‘하루 게스트 셰프’로 참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주도 출신 연구원이 갈치조림을 만들거나, 해외 유학파가 파스타를 만드는 등의 이벤트가 팀 내 소통을 강화하는 좋은 계기가 된다. 연구원들은 식사를 단순한 루틴이 아닌, ‘작은 즐거움의 시간’으로 여기며 하루의 하이라이트로 삼는다. 이러한 문화는 남극 생활의 고립감을 줄여주며, 기지 생활에 활력을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다. 남극에서의 식사는 단순한 영양 섭취가 아닌,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강력한 수단이다. 고립된 환경 속에서도 따뜻한 밥과 국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 음식이 사람을 위로하고 연결하기 때문이다. 조리사들의 헌신, 연구원들의 감사, 팀워크로 이뤄지는 한 끼 식사는 곧 남극 기지의 생명선이자 작은 기적이다. 2026년 현재, 남극 기지의 식사는 과학과 인간의 정서, 생존과 문화가 만나는 가장 중요한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