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지방이라고 하면 대부분 막연히 '남극과 북극은 비슷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둘 다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있고, 바람이 세고,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이미지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살아보고, 일해본 사람들은 안다. 두 곳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다르고, 그 차이가 때로는 우리의 인식 이상으로 극명하다는 걸. 나는 남극에서 14개월, 북극에서는 짧게 두 차례 체류하며 현장 작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그 시간을 통해 느낀 남극과 북극의 '진짜 차이'를, 누군가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감정과 일상까지 담아 풀어본다.
남극은 ‘고립된 대륙’, 북극은 ‘움직이는 바다’
남극은 대륙이다. 지질학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땅'이다. 그 위를 두텁게 빙하가 덮고 있고, 이 빙하 위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지들이 세워져 있다. 장보고과학기지, 세종기지 같은 한국의 남극 기지도 모두 이 '대륙 위'에 존재한다. 반면 북극은 땅이 아니다. 북극점은 실제로 바다 한가운데다. 단지 얼음이 덮여 있어 우리가 눈으로 보기엔 땅처럼 느낄 뿐이다. 그래서 북극에서의 근무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고정된 시설이 아니라, 해빙 위에 임시 기지를 설치하거나, 주변 국가의 북극권에 위치한 육상 기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남극에 들어가는 건 어렵다. 대개 항공이나 쇄빙선을 이용해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고, 일정이 정해지면 그 기간 동안은 외부로 나올 수 없다. 보통 여름철 기준 3~4개월, 겨울철엔 6개월 이상 고립된다. 식료품, 장비, 통신까지 모두 제한적이다. 이와 달리 북극은 상대적으로 ‘사람 사는 곳’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다. 알래스카,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러시아 북부 등을 통해 일정 기간 머물 수 있으며, 필요 시 교대나 물자 보충도 가능하다. 하지만 북극의 해빙은 점점 줄어들고 있어, 해마다 같은 장소에 연구기지를 세우는 것도 불확실해지고 있다. 이 점은 북극 근무가 남극보다 쉽다고만 보긴 어려운 이유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가장 큰 차이는 ‘바람’이다. 남극의 바람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칼처럼 날카롭고,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움이 있다. 처음엔 방한복을 아무리 껴입어도 10분을 넘기기 힘들었다. 바람 소리에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고, 얼굴 노출 부위는 몇 분 만에 감각이 사라진다. 북극도 춥지만, 남극 특유의 건조하고 매서운 바람은 다르다. 대신 북극은 습기가 많고, 바람보다도 예기치 못한 해빙 붕괴나 기상이변이 문제다. 북극에서 실험 중 해빙 균열이 발생해 장비를 회수하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당황스러움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연구의 방향이 다르다: 과거를 파는 남극, 현재를 추적하는 북극
남극은 시간의 층을 연구하는 곳이다. 수십만 년 전 대기의 흔적을 간직한 얼음 코어, 오존층의 변화, 자외선 조사량, 고지 자기 분석까지. 대부분 장기적이고 기초 과학에 가까운 연구가 많다. 예를 들어 빙하 코어를 채취해 온도와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분석하면, 과거 지구의 기후 사이클을 읽을 수 있다. 이건 단순한 관측을 넘어 기후변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남극의 대기 오염 수준도 세계적으로 가장 낮기 때문에, 미세한 변화도 감지 가능하다. 그래서 굉장히 정밀하고 예민한 장비가 많이 쓰인다. 그만큼 오차 없이 반복 측정하고, 장비 상태를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반면 북극은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를 추적하는 데 더 가깝다. 해빙의 두께와 면적 변화, 해양 생태계, 해수온도 상승, 북극곰과 같은 대형동물의 서식지 변화 등이 대표적인 연구 주제다. 여름엔 드론이나 자율운항 선박(AUV)을 이용해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는 경우가 많고, 위성 자료와 연동해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든다. 북극은 국제 협력의 무대이기도 하다. 여러 국가가 공동 캠프를 운영하고, 데이터를 공유하며, 서로 다른 접근법을 접목해 종합적인 결과를 도출한다. 연구의 성격상, 남극은 반복과 정밀이 중요하다. 같은 데이터를 오랜 기간 누적해야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참여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남극 내륙에서 자외선 조사량을 측정하는 작업이었는데, 측정 장비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조정돼야 했다. 눈이 쌓이면 성능이 떨어지고, 구름이 끼면 데이터에 영향을 준다.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지만, 나중에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그 꾸준함이 얼마나 의미 있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북극은 조금 더 유연하고 역동적인 데이터를 다룬다. 예상 못한 변화가 생기면 곧바로 장비를 옮기고, 분석 방향도 조정한다. 그래서 창의성과 빠른 판단력이 중요하다.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극지 생활
남극에서의 삶은 일종의 ‘수련’에 가깝다. 통신은 제한적이고, 사람은 늘 같고, 공간은 좁다. 특히 극야 기간에는 해가 뜨지 않기 때문에 생체 리듬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 밤낮 구분 없이 생활하면서 우울감이나 피로감이 쌓이기 쉽고, 같은 동료와의 마찰도 생긴다. 그래서 기지에서는 심리 상담, 규칙적인 운동, 공동 취미 활동이 굉장히 중요하다. 실제로 나는 남극에서 기타를 배웠고, 사진 동호회 활동도 했다. 매주 금요일엔 다 같이 영화도 봤는데, 그런 루틴이 없었다면 일상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반면 북극은 짧고 강하게 지나간다. 일주일~한 달 단위로 임무가 바뀌고, 구성원도 자주 바뀐다. 그래서 깊은 인간관계보다는 효율적인 협업이 중요하다. 통신은 원활한 편이라 노트북으로 회의도 가능하고, 날씨만 좋다면 하루 만에 드론으로 수십 km 탐사도 가능하다. 대신 날씨 변화가 갑작스럽기 때문에 항상 ‘계획 B’를 갖고 움직인다. 북극에서 가장 기억나는 건, 어느 날 해빙 위에서 실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해가 갑자기 지면서 바람이 몰아친 장면이다. 하늘은 붉게 물들고, 얼음은 서걱서걱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그 광경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식사는 남극이 더 안정적이다. 수개월치 식자재를 사전에 보급받아 기지 내에서 조리사들이 만든 식사를 먹는다. 메뉴는 반복되지만, 정성이 담겨 있고, 반찬 하나에도 ‘사람 손’이 느껴진다. 북극은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간편식 위주거나 직접 해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북극의 연구기지는 기본적인 숙소와 취사시설만 갖춘 경우가 많다. 이런 생활 여건의 차이는 장기 체류자의 스트레스 수준에도 영향을 준다. 무엇보다, 남극과 북극 모두 공통적인 건 ‘자연 앞에서 사람은 작다’는 걸 실감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거대한 빙하, 끝없는 바다, 말 한마디 없이 다가오는 바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들이 두렵기보다 묘한 평온을 준다. 인간 사회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이 극지에선 단순해진다. 오늘의 날씨, 장비 상태, 동료의 표정. 그 몇 가지만으로도 하루의 색깔이 결정된다. 나는 남극과 북극 모두를 경험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쉽지 않았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됐다. 남극은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고, 북극은 나를 민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둘 다,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