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극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꽤 반응이 극단적이었다. “와, 대박이네!”라며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진짜로? 제정신이야?”라며 걱정 섞인 눈빛을 보낸 사람도 있었다. 사실 나도 둘 다였다. 막연한 설렘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들었고, 출발 전 며칠간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남극이라는 말은 늘 특별한 울림이 있다. 너무 멀고, 너무 추워서, 뉴스에서나 등장할 법한 곳. 그런 남극에서 내가 ‘살게’ 되리라는 건, 출국 전까지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낯선 땅에서 만들어진 가장 규칙적인 하루
내가 머문 곳은 대한민국 장보고 과학기지였다. 평소에도 연구소에 몸담고 있었던 터라 익숙한 일과가 있을 줄 알았지만, 남극에서의 하루는 전혀 다른 리듬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여름엔 밤이 없다는 것. 백야는 진짜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없다. 저녁 9시, 밤 11시, 새벽 2시가 되어도 해가 그대로 떠 있는 그 풍경은 며칠간 내 몸의 시계를 완전히 뒤흔들어놨다. 결국 커튼을 두 겹으로 치고, 수면안대까지 써가며 억지로 ‘밤’을 만들어야 했다. 기상은 보통 아침 7시. 연구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우리는 자율 근무제를 따랐다. 하지만 자율이라고 해도 다들 정해진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아침 식사 후엔 바로 장비 점검이나 전날 데이터 정리 작업에 들어갔다. 내가 맡은 분야는 대기 샘플 관측과 간헐적인 기상 데이터 측정이었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기지 밖으로 나가야 하느냐, 안에서 실험만 하면 되느냐를 결정하는 것부터였다. 기상 상황이 나쁘면 실내에서 보냈고, 바람이 덜 불거나 기온이 상대적으로 온화한 날엔 무조건 야외 출동이었다. 눈보라가 치던 어느 날, 이미 며칠간 데이터가 누락된 상태였다. 바람이 잠깐 멈췄을 때를 노려 무리해서 나간 적이 있다. 방한복을 겹겹이 껴입고, 고글을 쓰고, 손발엔 두툼한 장갑과 신발을 신었다. 발걸음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따라, 장비가 있는 지점까지 걸어갔다. 눈이 많이 쌓인 날엔 장비를 찾는 것도 일이었다. GPS 위치를 찍고, 삽으로 눈을 퍼내며 “여기쯤이겠지”라고 중얼거리며 찾아 나선다. 땅속에 묻혀 있는 센서를 다시 꺼내 정비하고, 온도와 풍속, 습도 데이터를 다시 체크했다. 손끝은 얼어붙어 무감각했고, 눈썹에는 서리가 앉았다. 하지만 장비가 정상 작동하는 걸 확인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안도의 미소가 지어졌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실내로 돌아오면 따뜻한 식사와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은 늘 기대되는 시간 중 하나였다. 주방 팀이 정성껏 준비한 한식 메뉴는 정말 눈물 나게 반가웠다. 김치찌개, 잡채, 불고기 같은 익숙한 맛이 오히려 남극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을 현실로 연결해 주는 매개체 같았다. 그리고 밥 먹으며 나누는 짧은 수다는 우리가 인간임을 잊지 않게 해줬다.
‘혼자’ 일 수 없는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
남극에서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모든 것은 팀 단위로 움직인다. 야외 출동도, 실험도, 점검도. 장비를 나르는 것도 혼자선 불가능하고, 현장에서 실험을 세팅하는 데도 최소한 두 명은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팀워크가 중요해진다. 같이 간 동료들 중 한 명, K선배는 남극 근무가 세 번째였다. 경험도 많고 워낙 차분한 성격이라 내가 초반에 실수했을 때도 크게 뭐라 하지 않았다. “남극은 사람이 실수하는 곳이야. 그걸 줄이는 게 중요한 거지.” 그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K선배도 첫 해엔 여러 번 장비를 얼려먹었고, 기지 내에서 길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단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의 안전을 확인했고, 한 명이라도 늦게 돌아오면 다 같이 걱정했다. 내가 감기 기운으로 이틀간 방에 누워 있었을 땐 조리사님이 죽을 끓여 가져다주기도 했고, 같은 방을 쓰던 동료는 내가 말없이 누워 있는 걸 보고 의료담당자에게 먼저 알렸다.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남극에선 생명줄 같은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 관계는 빠르게 깊어졌다. 겨울이 되면서 극야가 시작됐다. 해가 완전히 지지 않는 여름과는 반대로, 해가 아예 뜨지 않는 시기다. 말 그대로 24시간 어둠이다. 기지 내부에는 늘 조명이 켜져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인공적인 낮’이었다. 이 시기엔 다들 조금씩 예민해진다. 누구는 말수가 줄고, 누구는 짜증이 늘고, 또 누군가는 자기 전에 혼자 이어폰으로 클래식만 듣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말 한마디에 민감해지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스스로에게 더 실망했다. 하지만 그만큼 서로를 챙기는 문화가 있었다. 주기적으로 스트레스 체크가 있었고, 운동 시간이 의무적으로 주어졌다. 가끔은 실내 자전거를 돌리면서 다 같이 넷플릭스를 보기도 했고, 누구 생일이면 간이 파티도 열었다. 그런 소소한 이벤트들이 심리적 압박을 견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남극에서 배운 것들은, 밖에서도 잊히지 않았다
남극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사람들은 많이들 물었다. “그렇게 힘든데, 왜 또 가는 사람들이 있어?” 처음엔 나도 궁금했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거기엔 뭔가 설명하기 힘든 울림이 있다. 남극에 있는 동안엔 불편함이 일상이었지만, 동시에 그만큼 명확했다. 내 역할, 오늘 해야 할 일,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 도시에서는 흔히 잊고 지내는 그런 감각들이 매일처럼 다가왔다. 특히, 남극의 풍경은 압도적이다. 새벽에 잠깐 바깥에 나갔을 때,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든 걸 본 적이 있다. 그날은 구름도 거의 없었고, 별이 손에 닿을 듯 가까웠다. 멀리 얼음 위를 걷던 황제펭귄 몇 마리가 조용히 지나가는 모습도 봤다. 그 순간 나는 이 세상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떤 말로도 설명이 안 되는 감정이었다. 바로 그런 경험들이, 다시 남극을 꿈꾸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남극 근무를 고민하고 있다면, 나는 한 가지 조언만 하고 싶다. 준비는 철저히 하되, 완벽할 필요는 없다고. 남극은 늘 변수가 많고, 예상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거기엔 사람들과의 연결, 자연 앞에서의 겸손,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본질적인 감정들이 있다. 차갑지만 따뜻한, 고독하지만 끈끈한, 불편하지만 소중한 그런 곳이다. 남극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곳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준비된 사람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당신이 그 다음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